마이클 조던 3편: 인종을 초월하는 존재

마이클 조던 3편: 인종을 초월하는 존재

마이클 조던 3편: 인종을 초월하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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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부유하는 인종 기표로서의 마이클 조던


기호들과 초의미화(hypersignification)가 이루어 내는 이렇듯 복잡한 대열 속에서, 마이클 조던은 "자유롭게 부유하는" 인종 기표이기도 하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그는 흑인 남성성의 정형화된 이데올로기적 묘사와 관련하여 기표의 경제에 일면 개입하면서 일면 이탈하는, 복합적이고 유동적인 과정을 재현한다. 예컨대 NBA에 입문하여 나이키와 관계를 맺기 전인 대학 시절에 이미 대중 매체들은 조던을 천부적인 운동 신경 운운하는 해묵은 코드들과 연관지음으로써, 대중적인 인종 담론을 지배해 온 심신 이원론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앤드루스 1996). 비범한 운동 신경이라는 담론은 흑인의 타고난 육체성(physicality)에 대한 상식적 가설에 기반한다. 그리고 이러한 가설은 한때 노예 제도와 백인 우월주의의 사회 진화론적 근거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던 인종주의적 규정이기도 하다. 이른바 천부(naturalness)의 담론은 인종적으로 기술된 역사의 단면을 명확하게 보여 주며, 애초에 마이클 조던이라는 명사 기호 또한 이러한 역사에서 연원한 것이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조던이 미국 대표 팀의 금메달 획득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자, 일부에서는 그를 "마치 덩크를 위해 태어난 듯하다"는 등의 사이비 과학의 논리로 묘사했다(앞의 글). 이러한 타고난 육체의 내러티브는 두말 할 나위 없이 이른바 천부적인 "에어 조던이라는 페르소나의 촉매제로 작용했다. 이처럼 끊임없이 가치 부양된 조던의 운동 신체는 인종적 타자성을 나타내는 가시도 높은 기표로 기능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문화적 의미들 또한 특정한 역사적·지리적·정치적 맥락 내에 존재하는 변화무쌍하고 상호 중첩되는 대중 문화의 영역에 의존한다는 포스트 구조주의자들의 주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 미국이라는 맥락에서 마이클 조던은 나이키 · NBA · 여타의 기업 스폰서·매체 등에 의해 20세기 후반의 자본주의와 대중적인 인종 이데올로기에 맞게, 그리고 많은 경우 반동적인 포스트 레이건주의의 의제 안에서 변용되고 있다(앤드루스 1996). 실제로 조던의 농구 경력은 레이건 및 포스트 레이건 시대, 다시 말해 '복고적인 경제 및 문화 정책이 실행되고 이로써 보수적인 가치가 전미국을 쥐고 흔드는 것'으로 특징지어지는 독특한 역사적 계기의 상승 국면과 그 궤를 같이한다. 1980년대와 90년대를 통틀어 신우익 지지자들은 걸핏하면 60년대와 70년대의 지나친 자유주의적 정책이 미국을 정신적·경제적 침체 상태에 빠뜨렸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과 함께 보수주의자들은 대중의 감상·취향·문화를 동원하면서 포퓰리즘적인 감정의 정치에 뛰어들었고, 레이건주의는 대중 문화가 정치를 주도하는 감정 지향적 투쟁으로 변화해갔다. 선거 운동 기간과 대통령 재임 기간을 막론하고, 레이건이 누린 인기의 상당 부분은 정치적 문제들을 말초적인 쟁점으로 전환시켜 내는 그의 능력에서 나왔다(스나이더 1990). 이러한 신보수주의의 목표는 일상 생활의 전략적 측면들에 대한 대중의 열렬한 관심을 조장함으로써, 미국의 국가적 자긍심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보수주의자들은 사회 정책에 대한 최소한의 국가 개입과 강력한 국가 방위를 추구하는 한편, 근면한 노동·개인적 책임성과 희생 같은 이른바 전통적인 미국적 가치를 부흥시키는 데 있어 진보적인 정책 구상의 철회는 필연이라고 생각했다(리브스와 캠블 1994). 1980년대에는 성 정치와 인종 정치가 "만인의 자유"라는 미국적 기본 관념을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새로운 정책과 실천들이 득세하는데, 이는 소수자 보호조치의 취지가 퇴색되고, 신우익의 수사가 "역차별"에 대한 비난으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 이러한 수사가 낳은 실질적 결과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으로는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양 진영에서 단행한 사회 복지 프로그램의 축소와 함께, 실업·도시의 타락·폭력·약물 남용 등과 관련된 사회·정치적 불평등의 문제를 개인적 병리 현상이나 일탈의 문제로 치부하려는 신우익의 시도를 들 수 있다.

마이클 조던, 인종을 초월하는 존재


정직하고 건전한 카리스마


리브스와 캠블(1994, p.3)은 좀더 광범위한 관점에서 보아야 할 사회악을 도덕적이고 개별적인 문제로 치부하려는 신우익의 시도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마약과의 전쟁" 캠페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 캠페인에는 사실상 "탈산업화로 인한 경제적 파탄이 국민 내부의 흑백 긴장관계를 악화시키고 빈자보다는 부자들에게 이로운 정책에 대한 중산층의 지지를 고착시키는 데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것"이라는 일련의 문화적 구조적 의도가 은폐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신체를 국가화함으로써, 다시 말해 특정 신체는 바람직한 특징에, 여타의 신체는 일탈적이고 타락한 특징에 대응시킴으로써 레이건주의는 국가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기표를 정의하고 인종주의적 감정을 동원하는 데 일조했다(퍼즈 1994, 앤드루스 1996). 일탈적인 신체는 당연히 유색 인종 또는 여성의 신체였다. 반면 가시도 높고 부드러운 페르소나를 가진 재능 있는 남자 선수로서, 조던이라는 기표는 재빨리 대세를 거슬러 바람직한 '강인한 신체'강하고 자신감 넘치며 성공적인 의미화하게 되었다. 신우익은 예의 강인한 신체를 정서적·실질적으로 이용하여, 복지 프로그램에 대한 의존·범죄 · 약물 남용과 연관되는 이른바 나약한 신체와 대비를 이루는 모범으로 삼았다. 이러한 인종주의적 규정 속에서 조던은 소위 (신)우익적인 특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신우익이 비하하던 아프리카계 흑인 대중과 도덕적으로 상반되는 인물로 그려졌다.

신자유주의 경제와 신보수주의 정치 그리고 신우익의 도덕주의적인 문화적 전통을 체현함으로써, 나이키 주도의 조던 내러티브는 피부색을 초월한(color-blind) 미국 사회라는 레이건주의의 인종주의적 시각을 전파시켰다. 이러한 신화적 영역 내에서는 개인적 인내가 한 사람의 성공을 결정하는 주된 요인으로 주조되고, 인종주의와 착취를 연상시키는 사회적으로 각인된 경험과 정체성들은 적절치 못한 과거의 유물로 간주되었다. 이처럼 '참으로 레이건적인' 시대 조류 속에서, 조던의 겸손함과 내면적 추진력·책임감·도덕 의식들은 널리 칭송받았다. 나이키에 뒤이어 맥도널드·코카콜라(이후 게토레이로 바뀐다) · 시보레 · 휘티스 등이 잇달아 내세운 광고 아이디어와 연결되면서(앤드루스 1998), 조던은 "옛 시절의 가치들을 지닌 "놀랄 만큼 재능 있고, 달변인데다, 매력적이고, 친근한 인물로 주조되었다(데이비드 포크, 커크 패트릭 1987). 예컨대 조던은 선수 생활 초기에 출연한 맥도널드 광고에서 당시 영부인 낸시 레이건의 주도로 벌어지고 있던 "마약에는 그저 '노'라고 말하세요" 캠페인에 화답해 개인적 책임감과 건강한 개인주의의 메시지를 특유의 달변으로 전한 바 있다. 이 광고에서 조던은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피우지도 먹지도 마세요. 지금 마약을 하고 있다면 당장 그만두세요. 그리고 도움을 청하십시오. 맥도널드는 여러분 스스로 기회를 갖기 바랍니다. 진정코 여러분에게 주어진 멋진 가능성을 열어갈 기회를 말입니다. 저 또한 그것을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와 같은 비디오 클립을 통해 조던은 정직하고 건전하며 믿을 만하고 사려 깊은 인물, 참기 어려운 유혹에도 흔들림 없는 "강인한 신체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약물남용에 대한 혐오를 자발적으로 표명하는 일이야말로, 그가 가진 명백한 도덕적 가치를 가장 효과적으로 의미화하는 열쇠인 것이다. 더구나 이처럼 정직하고 건전한 카리스마는 신우익에 의해 악마시(demonize)되어 온, '규율이라곤 없고 약물에 절어 있는' 도시 흑인의 신체와 대비를 이루면서 너무나 당당한 것으로 묘사된다. 보수주의적 의제라는 맥락에서, 조던은 흑인 남성성을 범죄적·폭력적이라 악마시하는 고정 관념상의 특징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하여 마이클 조던은 빌 코스비, 우피 골드버그, 오프라 윈프리와 같은 당대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이들이 보여 주는 발군의 성공담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대중을 '건강한 개인주의와 피부색 초월의 신조'라는 레이건주의의 교의에 따르면 미국 사회에서 성공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개인적 의지가 부족한 자들로 몰아붙이는 빌미를 제공한다(리브스와 캠블 1994, 앤드루스 1996, 맥도널드 1996).

인종을 초월하는 존재


조던이라는 특정 이미지 그리고 상품 기호 일반의 가소성이 더욱 잘 나타나는 경우를 찾으려면, 흑인 남성성을 일탈적인 것 혹은 '나약한 신체'로 그려 내는 묘사 방식에 맞게 조던의 국민적인 페르소나가 새로이 주조되는 변화무쌍한 맥락들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대표적인 예로는, 조던의 도박 행각에 대한 언론 보도를 들 수 있다. 내용만을 놓고 보면, '인종을 초월하는 존재'로서 조던이 지닌 인간형은 그가 도박에 미쳐 있다는 매체들의 잇따른 비난으로 완전히 빛이 바랜 듯하다. 예컨대 데이브 앤더슨은 「조던, 애틀랜틱시티에서 추태를 부리다」(1993)라는 선정적인 의도가 엿보이는 기사를 통해, "농구 사상 최고의 선수"가 NBA 플레이오프 기간에 새벽 2시 30분까지 도박판을 벌여(조던을 포함한 여러 소식통은 이보다 한 시간 일찍 끝났다고 반박했다) 팀 동료와 코치들을 실망시켰다고 보도함으로써, 조던을 일탈적인 라이프스타일과 결부시켰다. 조던의 상습적인 도박 행각에 대한 사람들의 끈질긴 추적은 리처드 에스너스의 책 마이클과 나』 (1993)의 발간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조던은 요행히 그때까지 구축해 온 자신의 국민적 페르소나를 활용하여 도박빚이 엄청나다는 세간의 비난을 피해 갈 수 있었지만, 이른바 '도박' 내러티브는 1993년 8월 그의 아버지가 살해되는 사건을 기점으로 다시 불거졌다. 제임스 조던의 주검이 발견되자 각종 언론 매체들은 은연중에 조던의 도박 행각과 아버지의 죽음을 연결시켜, 이 사건이 조던의 도박빚에 대한 보복으로 빚어진 일임을 암시하는 기사를 내보냈다(도비 1994), 조던의 이른바 일탈적 (인종) 정체성과 관련된 매체들의 추측성 보도는 제임스 조던의 살해 혐의자가 체포됨으로써 점차 수그러들었다. 이후 각종 매체는 그를 슬픔에 잠긴 아들의 모습으로 잇따라 보도함으로써, 조던이 가진 국민적 기호 가치를 회복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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